미국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자 뉴욕의 상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고대 이집트부터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 모인 300만 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흔히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이 왕실 보관품이나 제국주의 시대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예술품들을 토대로 국가 차원에서 건립했다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철저하게 민간의 기증으로 세워졌다. 1866년 파리에 살던 미국인들이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미국에도 이제 명품 미술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뜻을 모은 게 계기였다. 1870년 그 뜻에 동참한 변호사, 사업가, 예술가들은 십시일반으로 기금과 기증품을 모아 뉴욕에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개관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등장은 미국의 국격을 높이는 분기점이 됐다. 20세기 초 산업화 시기 막대한 부를 거머쥔 미국인들을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게 했고, 부를 가진 자들이 더 많은 미술관을 짓게 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효과’는 뉴욕을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큰 몫을 했고, 쇼 비즈니스와 상업 예술의 메카였던 도시를 ‘영원불멸의 명화 한 점을 보러 찾아오는’ 명품 도시로 만들었다.
서부에 게티가 있다면 동부엔 20세기 전설의 여성 컬렉터이자 예술 후원가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이 있다. 광산 재벌의 손녀로 태어난 구겐하임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화가 100여 명의 작품 수백 점을 사들였다. 그는 현대미술의 주 무대를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가 없었다면 살바도르 달리도, 마르셀 뒤샹도, 잭슨 폴록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 페기 구겐하임 재단은 뉴욕 맨해튼의 솔로몬구겐하임미술관, 스페인 빌바오와 독일 베를린의 구겐하임미술관, 이탈리아 베네치아 미술관 등을 운영하며 여전히 현대미술의 정점에 서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의 부동산 사업가인 호르헤 페레즈(1949년생)는 마이애미미술관에 자신이 소유한 2000만달러 상당의 중남미 미술 컬렉션을 기증하고, 추가로 2000만달러를 기부했다. 이를 계기로 2013년 ‘페레즈 아트 뮤지엄 마이애미(PAMM)’로 이름을 바꾼 이 미술관은 라틴 미술의 성지가 됐다.
쿠바계 이민자인 카를로스 드 라 크루즈 부부는 1970년대부터 마이애미에 살며 컬렉팅한 미술품을 기반으로 비영리단체 ‘무어 스페이스’를 세웠다. 마이애미 디자인 지구 안에 ‘드라크루즈 컬렉션’을 열어 현대미술 작품을 무료 공개하고 있다. 루벨미술관은 유명 컬렉터 루벨 부부가 70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개인 박물관. 신진 작가를 대거 양성하는 체계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유명한데, 스타 흑인 작가인 아모아코 보아포도 여기서 탄생했다.
‘LA의 천사’로 불린 억만장자 일라이 브로드(1933~2021)도 있다. 주택 건설사 카우프만과 브로드를 공동 창업하고, 금융서비스 기업인 선아메리카를 세운 그는 2015년 1억4000만달러를 들여 LA 도심 한복판에 벌집 모양의 새하얀 건축물 브로드미술관을 지었다. 그는 부인과 함께 과학, 의학, 교육 분야에 20억달러를 기부하고 하버드, MIT와 함께 세운 생물의학 및 유전자 연구기관 브로드인스티튜트에 6억달러를 쾌척했다. 40년간 모은 2000여 점의 미술품을 “LA 시민에게 무료로 공개하겠다”며 3층 높이의 대형 미술관을 지었다. 개관 후에도 2억달러를 추가로 기부하며 평생 모은 자산을 기꺼이 내놨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열기 이전에도 LA현대미술관(MOCA) 창립 회장으로 일하며 판자촌이 많던 LA 다운타운을 ‘예술지구’로 변화시킨 주역이다.
마이애미·뉴욕·LA=김보라 기자
※이 기사는 한국경제신문이 운영하는 국내 최대 문화예술 포털 ‘아르떼’에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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